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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이어 표범?”… 영주서 커다란 ‘동물 발자국’ 발견되자 발칵 뒤집혔다

경북 영주시 상망동의 한 채소밭에서 표범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동물 발자국이 발견돼 야생동물보호협회 등이 현장 조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마을 주민 박모(49) 씨는 “지난 24일 상망동에 있는 자신의 콩밭에서 이상한 동물 발자국이 발견돼 환경단체에 의뢰했더니 표범 발자국 같다고 말해 곧바로 영주경찰서 동부지구대로 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야생동물보호협회 관계자는 “2~3년 전에 발견된 발자국보다는 절반 정도 크기지만 발자국 크기와 깊이로 볼 때 몸무게는 30~40kg, 크기는 70~80cm으로 추정되는 표범 같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성체의 경우 표범은 발 크기가 15~20cm 보폭 70~80cm이며 호랑이의 경우 발 크기, 20~25cm, 보폭 120~150cm로 몸무게는 250~300kg에 달합니다.

영주소방서 관계자는 “주민신고로 현장을 살펴봤다”며 “발자국이 일렬로 나있어 고양잇과 동물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확한 것은 전문가 조사가 끝난 뒤 확인해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영주시는 대구지방환경청에 발견된 동물 발자국 사진 등을 제출하고 사실 확인 작업에 나섰으며 국립생물자원관과 야생동물 보호협회 등과 함께 다음주 중 현장 확인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토종표범이 1962년 합천 오도산에서 마지막으로 생포되기 2년 전인 1960년 진주포수였던 노종생(작고)씨가 합천군 삼가면과 진양군(현 진주시) 미천면을 연결하는 방아재에서 잡은 흑백 표범 사진이 입수됐습니다.

이 사진은 진주포수 노종생씨의 자제인 노덕제(68·진주시축구협회 심판위원)씨가 본보의 ‘100대명산 합천 오도산’ 편에서 언급한 ‘한국토종표범이 1962년 오도산에서 마지막으로 생포됐다’는 기사를 읽고 본보에 제보하면서 공개된 것입니다.

노덕제씨는 이 외에도 표범을 잡기 1년 전인 1959년 부친이 지리산 조개골에서 잡은 반달가슴곰 사진도 함께 공개했습니다.

사진에는 중앙에 진주포수 조삼세(작고)씨가 총을 어깨에 걸치고 표범을 눕힌 채 머리를 무릎에 얹은 상태의 모습이 찍혀 있습니다.

표범은 특유의 선명한 매화무늬를 갖고 있어 줄무늬인 호랑이와는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오른쪽 건장한 체구의 사람이 노씨의 부친 노종생 포수이며 사진을 제공한 노씨는 당시 중 1년으로 사진을 같이 촬영했지만 옆에 서 있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진주시 장재동 소재 조삼세씨 집에서 촬영한 것이다. 노덕제씨는 현재 진주시축구협회심판위원으로 있으며 각종축구대회 심판을 보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1960년까지 합천 오도산을 비롯한 진주지역에 표범이 많이 서식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합천 오도산에서 마지막으로 생포된 한국표범과 비슷한 시기에 잡은 표범사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노덕제씨는 인터뷰에서 1960년에 표범을 잡았던 당시(대아중 1년) 상황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노씨는 “산청 합천 등 진주 인근에 호랑이(표범)가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해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이 문제로 경찰은 골머리를 앓았으며, 급기야 진주 포수에게 호랑이를 잡을 것을 요청했었다”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습니다.

실제 진주의 한 목욕탕 사장이었던 일명 ‘털보아저씨’는 호환(虎患)을 입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씨는 “심지어 합천에서 진주로 오려면 방아재를 넘어야 했는데 그곳에 호랑이가 워낙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해치는 바람에 30여명이 모여야만 함께 이동했던 무서운 장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차출된 진주포수는 부친인 노종생을 비롯해 조삼세 천갑열 오병근 조인세 등이었습니다. 그 중 노종생포수는 ‘산세를 보고 동물 발의 움직임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의 ‘노발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발군의 사냥솜씨를 발휘했었습니다.

이는 동물의 이동 경로를 훤히 꿰뚫고 있어 포수와 몰이꾼을 어느 곳에다 배치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노종생포수는 180cm에 달하는 큰 키와 건장한 체구로 산돼지 한 마리와 사슴 두마리를 더블백에 넣어 들쳐 메고 이동이 가능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고 합니다.

출동한 진주포수들은 며칠 동안 방아재 인근에 잠복해 있다가 표범을 잡았습니다. 노씨는 “표범을 잡은 후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한결 자유로웠다”고 전했습니다.

노씨는 또 “표범을 잡기 1년 전인 1959년 지리산 조개골에서 부친과 함께 권흥관 주인 김용운 포수와 3∼4개월 동안 헤맨 끝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를 잡았다”고 전했습니다. 봄이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웅담이 작았으며 이를 판매한 돈으로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했었던 것으로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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