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있을 때는 지구가 그리웠는데, 지구에 도착하니 우주가 그립군요.” 2005년 10월 11일 오전 5시 9분(모스크바 시각), 카자흐스탄 북부에 있는 아르칼릭 마을 근처 초원지대에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가 내려앉았다.
대기하던 러시아 구조대원이 소유즈의 문을 열자 ‘가장 오랜 시간을 우주에서 보낸’ 세르게이 크리칼레프가 지구에 발을 디뎠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다녀온 이번 우주비행은 크리칼레프의 6번째 비행이었다. 이번 179일 23분의 비행으로 그는 총 803일 9시간 39분의 우주비행기록을 갖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행기록이다.
크리칼레프가 경신하기 전의 기록은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 아브데예프가 갖고 있던 747일이었다.
크리칼레프는 1958년 4월 27일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수영과 볼링, 산악자전거, 곡예비행을 즐기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러시아 국립 곡예비행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1983년에는 모스크바 챔피언, 1986년에는 옛 소련 챔피언에 선정됐다.
그는 1988년 옛 소련 우주정거장 ‘미르’(MIR)를 다녀오며 우주에 첫발을 내딛었고, 두 번째 우주비행도 미르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두 번째 미르 방문에서 최장시간 우주비행이란 대기록을 가능하게 한 사건을 겪는다. 바로 우주 미아로 150여일 동안 우주에 방치된 것.
크리칼레프가 미르로 떠난 1991년, 소비에트 연합의 소속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독립하며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들어섰다.
체제가 바뀌며 러시아는 미르에 우주선을 보낼 자금이 부족해졌고, 1991년 11월 크리칼레프를 지구로 귀환시키려던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우주에 남겨진 크리칼레프는 언제 지구로 돌아갈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90분마다 지구와 교신하고, 1주일에 2번 러시아 우주센터를 방문한 가족과 통화하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고 밝혔다.
크리칼레프는 귀환 예정일보다 150여일이 지난 1992년 3월 25일 마침내 지구로 돌아왔다. 이마저도 독일 정부가 2400만 달러를 지원한 덕분이었다.
이 150일이 없었다면 아브데예프의 우주비행 기간인 747일보다 짧으니 옛 소련 붕괴가 대기록 달성에 한몫한 셈이다.
크리칼레프는 레전드(legend)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도 여럿 붙는다.
우선 최초로 미국 우주왕복선에 탑승한 러시아인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1994년 ISS 건설을 위해 우주에서 전자 부품을 조립하는 실험을 했다.
당시 NASA는 우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경험 많은 우주인이 필요했고, 크리칼레프가 적임자였다. 그는 그해 미국 우주인과 함께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해 8일 동안 지구를 130바퀴 돌며 우주 공간에서 재료가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했다.
크리칼레프는 ISS를 방문한 최초의 우주인이기도 하다. 1998년 12월 4일 그는 ISS를 건설하기 위해 미국인 윌리엄 셰퍼드, 러시아인 유리 기젠코와 함께 우주로 향했다.
그들은 11일간 우주에 머무르며 지구에서 쏘아올린 ISS 모듈을 조립했다. 조립을 시작하는 첫날인 7일, 그들은 7시간 동안 무중력공간을 날아다니며 발전소 역할을 하는 자랴(러시아어로 ‘새벽’이란 뜻)에 여러 모듈을 연결하는 유니티(‘통일’이란 뜻)를 결합했다.
이틀 뒤에는 유니티에 2개의 안테나를 설치했다. 그 다음날 크리칼레프는 유니티로 들어간 뒤 연결통로를 거쳐 자랴로 이동했다. 지상에서 ISS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통신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로써 ISS의 첫 방문객으로 이름을 올렸고, ISS의 첫 번째 조립을 무사히 마친 뒤 15일에 지구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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