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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먼저 건너가..” 동굴탐험을 떠난 14세 소년, 동굴에 물이 범람하게 되자 친구들을 먼저 챙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수학여행을 떠난 한 무리의 학생들 그들은 학교 근처에 있는 동굴을 탐험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동굴 안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주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했을 소년의 하루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된다.

2005년 11월 당시 영국에서는 학생들의 야외 견학과 현장 탐험을 비롯해 교실 밖에서의 야외 활동 프로그램을 촉진하라는 교육부 장관의 수학여행 장려 계획이 있었다.

이후 많은 학교들이 수학 여행 프로그램을 개선해 진행하게 되었고, 영국 노스요크셔에 있던 테드캐스터 그래머 스쿨은 장관의 발표가 있은지 2주도 지나지 않아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다.

평소 장난기 많고 활동적인 성격이었던 조셉 리스터(당시 14세), 조셉은 영국 로스요크셔에 위치한 테드캐스터 그래머 스쿨이라는 중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활발한 성격이었고 특히 친구들과 함께 축구하는 것을 좋아해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축구만 하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11월 14일 월요일, 이 날은 그래머 스쿨에 일주일간의 수학여행 기간 중 첫 날이었고 조셉은 10여 명의 학교 친구들과 함께 노스요크셔의 어퍼 니더데일 지역에 있는 야외 교육센터에 방문한다.

당시 학생들은 10 ~ 11명씩 그룹을 이뤄 조 활동을 하게 되었고, 조셉의 조는 주변에 있던 작은 구멍을 통해 맨체스터 동굴 탐험을 준비 중이었다.

맨체스터 동굴은 내부가 엄하지 않아 일반적인 등산과 비슷한 수준의 동굴로 비전문가는 물론 어린 학생들의 탐험 코스로 자주 활용되었다.

하지만 엄청난 폭우가 내린 후, 인근의 스카하우스 저수지에서 물이 방출된 후에는 동굴 안에 물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졌기 때문에 동굴 탐험가들 사이에서 이 위험성이 잘 알려져 있어 사전에 수위를 확인한 후 탐험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렇게 조셉을 포함한 11명의 학생들과 선생님 1명, 야외센터 직원 1명, 그리고 17살의 자원봉사자가 동행하여 맨체스터 동굴 탐험을 시작한다.

동굴 내부에 물이 굉장히 차가웠지만 발목까지 차오르는 정도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별 무리 없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사고에 대한 걱정이 없는 분위기였다.

그들이 동굴 탐험을 시작해 입구 쪽에 위치한 넓은 공간을 지나고 있을 때쯤 동굴로 물길이 이어져 있는 니드강에는 심상치 않은 폭풍이 접근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 근처에 스카하우스 저수지 댐에 시간당 80km의 속도로 강풍이 불었고 이로 인해 물이 니드강으로 흘러들어 강이 범람하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불어난 물로 강의 수위는 시간당 약 1m 이상씩 높아졌고 이 물은 조셉과 친구들이 탐험 중인 맨체스터 동굴로 급격하게 유입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학생들은 폭이 넓은 메인 챔버 구간을 지나 더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진흙과 흙탕물 구간을 기어가거나 좁은 통로를 뒤집고 나오는 등 긴 시간에 걸친 탐험 끝에 동굴의 끝지점에 도달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공간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길이 10m, 높이 1m 정도의 크롤이라 불리는 비좁은 통로만 기어가면 그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크롤 구간을 통과해 마지막 공간을 돌며 탐험하던 중 센터 직원은 물의 수위가 성인의 무릎 위까지 많이 높아져 있다는 걸 깨달았고 이에 이상함을 느껴 수위 체크 장비를 확인해 보니 정상적인 수치를 넘어서 급격하게 수위가 상승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학생들에게 들어왔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소리쳤고 학생들은 우왕좌왕하며 크롤 입구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가 크롤 통로 앞에 모였을 때 이미 통로는 거의 끝까지 물이 차오른 상태였고 거기다 당시 그곳의 환경은 불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암흑이었다.

기어나가야 할 통로가 물에 잠겨 있는 걸 보고 모두가 패닉에 빠졌지만 센터 직원은 재빠르게 탈출 지침을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는데 먼저 잠수를 해 수영으로 통로를 빠져나가서 통로 중간 천장에 아직 남아 있는 공간에서 숨을 쉬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먼저 통로를 넘어간 자원봉사자가 반대편에서 기다리며 도착하는 학생들을 물 밖으로 끌어 내주기로 한다.

하지만 통로가 좁고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당황해 있어 시간이 계속해서 지체되었는데 어느새 물은 학생들의 허리춤을 넘어 어깨까지 차올랐고 당황한 학생들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움직였다.

마지막 3명의 학생이 남았을 때, 선생님과 센터 직원은 재빨리 그들을 크롤 안으로 밀어 넣었고 그렇게 모두가 크롤을 통해 빠져나온다.

학생들 모두가 그곳을 탈출했다고 생각한 선생님과 센터 직원은 마지막으로 인원 체크를 하였는데 한 명이 보이질 않았다.

센터 직원은 즉시 크롤을 다시 넘어가 실종자를 찾을 수 있었지만 다시 넘어갔다가는 죽을 수 있다는 공포심에 그러지 못했고, 조셉이 진흙더미에 올라가 버티고 있길 바라며 동굴을 빠져나온다.

그 후 오후 4시 10분경 빠르게 빠져나온 일행들은 인근에 위치한 노스요크셔 경찰서로 구조 요청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학생의 실종 소식을 들은 산악구조대 소속 크리스토퍼 폭스가 현장으로 와 동굴로 진입한다.

그는 평소 동굴 탐험을 즐겨해 동굴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구조 작업을 시작해 크롤 근처까지 접근하였는데 그곳은 수위가 많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상태였다.

수위가 좀 낮아졌기 때문에 조셉이 생존에 있다면 근처 어딘가에 있어야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폭스는 발목과 얼굴이 맞닿은 모습으로 누워 있는 조셉을 발견한다.

발견 당시 조셉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몸에 힘이 빠져 있었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해 봤지만 호흡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폭스는 서둘러 그를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왔고 근처 병원으로 빠르게 옮겨 치료를 시도했지만 조셉은 그날 저녁 최종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는다. 조사 결과 조셉의 폐에는 물이 가득 찬 상태였고 그는 익사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난다.

이 사고는 맨체스터 동굴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인명 사고로 야외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시의회는 직장 보건 및 안전법에 관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당시 야외 센터 직원이자 동굴 탐험을 이끌었던 동굴 탐험가 토니 보일은 사고 당일로부터의 일전에 해당 지역에 비가 많이 내려 저수지와 강의 수위가 높았음에도 이를 사전에 체크하지 않아 사고를 유발한 것에 대해 재판을 받는다.

당시 조셉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친구 에이미와 머피에 따르면, 조셉이 통로 앞에 몇 명 남아 있지 않았을 때 먼저 가라고 양보하였고 그들이 빠져나올 때 뒤에서 잡아주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조셉을 추모하는 추모비와 기념관이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조셉의 안타까운 사고를 추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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