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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하러 갔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부부, 그리고 5개월 후 바닷가에 떠내려온 쪽지에 써있던 ‘부부가 마지막 순간’에 한 말..

푸른 바다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 생각에 들떠 있는 두 사람 곧 함께 온 일행들과 물 속으로 다이빙을 시작한다.

그렇게 다이빙을 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주변에 사람이 없어 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은 물 위로 올라오는데 그곳에는 보트도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호주 퀸즐랜드 지역의 해안에는 최소 2천9백 개의 암초가 있는 세계 최대 산호초 지역인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가 있다.

이곳은 따뜻하고 깨끗한 물로 유명해 매년 관광객들이 몰려와 보트 여행을 즐기는데, 특히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스쿠버 다이버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다.

1998년 1월 25일 한 그룹의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 있는 세인트 크리스핀 리프로 향한다. 보트에 탑승한 사람은 모두 26명이었고 그 중에는 미국에서 온 한 쌍의 부부가 있었다.

톰 로너건과 아일린 로너건, 루이즈이나 주립대학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대학 졸업 후 결혼하여 10년 차 부부였는데 호주와 하와이 인근에 있는 투발루와 피지에서 2년여 간의 봉사단 순방을 마치고 1998년 1월 25일 여행차 호주 퀸즐랜드에 방문한다.

평소에 취미로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던 아일린 덕에 남편 톰도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즐겨왔는데 그렇게 두 사람은 퀸즐랜드에서 다이빙을 하기로 하였고 곧 보트에 올라 목적지로 향한다.

선장은 약 40km를 항해한 후 보트를 세웠고 그곳에서 톰과 아일린을 포함한 26명의 인원들은 다이빙 장비와 잠수복을 갖춰 입으며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선장은 모든 인원들의 장비를 하나하나 체크해주며 한 시간 이내로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올 것을 강조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톰과 아일린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약속된 한 시간이 다 되었을 때쯤 사람들은 한두 명씩 보트로 복귀를 하고 있었고, 모두가 탑승했다고 판단한 선장은 배에 시동을 걸어 출발했던 해안으로 향한다.

하지만 당시 선장은 인원을 잘못 계산해 총원 26명 중 24명만을 태운 채 해안가로 향하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시각 물 위로 올라온 톰과 아일린은 보트가 보이지 않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아 순간 공황 상태에 빠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자신들이 보트로부터 버려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짐이 보트에 실려 있으니 해안가 도착 후 짐 정리 중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채 다시 돌아와 구조해 줄 거라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해안가에 도착한 선장은 보트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한 듯 그날의 스쿠버 다이빙 일정을 종료 처리해버렸고 그렇게 두 사람은 사고 시간으로부터 약 48시간 동안 잊혀진다.

사고 후 약 2일의 시간이 흘렀을쯤, 한 사람에 의해 보트 안 구석에 박혀 있는 짐 가방이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부부의 지갑과 여권이 발견되어 최근 보트 탑승객 명단과 대조를 해보던 중 통과 아일린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두 사람의 실종을 인지한다.

그 후 약 3일간 대규모의 항공해상 수색이 시작되어 사고 지점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며 인근 섬을 모조리 뒤져봤지만 결국 두 사람을 찾는 데 실패한다. 그때는 이미 사고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골든 타임이 지난 뒤였다.

그렇게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2월의 어느 날 퀸즐랜드 북부 해안으로 잠수복 하나가 떠밀려 온다.

이 잠수복은 여성용이었고 조사관에 의해 잠수복에 붙어 있는 따개비의 성장위를 분석해보니 1월부터 바다에 잠겨 있던 것으로 확인되어 이 잠수복을 실종된 아일린의 잠수복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사건 직후 경찰은 톰과 아일린의 숙소를 수색하던 중 일기를 발견하였는데, 내용 중에는 빠르고 평화로운 죽음에 관한 내용을 비롯해 죽음에 대한 내용이 여러 문장에 쓰여 있었고 이로 인해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다이빙을 계획하였거나 위장을 한 뒤 어딘가로 이동했을 것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한다.

또한 당시 보트를 운전했던 선장은 부부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사고 다음 날인 1월 26일 같은 장소로 스쿠버 다이빙을 떠난 또 다른 선장은 그날 자신의 보트 안에는 전부 이탈리아인만 탑승해 있어 모두가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하였지만 돌아오는 보트 안에서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고 해안가에 도착해 탑승객 모두가 내린 뒤 떠나가는 그들의 숫자를 세워보니 출발식보다 두 명이 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톰과 아일린을 태웠던 보트의 선장은 부부의 계획된 실종을 주장하였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그 후 사고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난 1998년 6월, 사고 지점으로부터 121km 떨어진 포트 더글라스 해변에서 공기 탱크를 비롯한 부부의 다이빙 장비와 소지품이 떠밀려와 발견되었고 이것으로 당시 조사관은 수많은 의혹을 일축한다.

그리고 장비 중에는 수중에서 메시지를 작성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다이브 슬레이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톰과 아일린의 다이브 슬레이트에는 다음과 같이 작성되어 있었다.

1998년 1월 26일 오후 3시, “우리가 죽기 전에 우리를 구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메시지는 사고 당일인 25일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여 그들이 적어도 하루 동안은 물에 계속 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장비와 잠수복에서는 산호초에 긁혀 구멍이 난 것 외에 상어 따위에 물린 흔적이나 핏자국이 발견되지 않아 무언가에 의해 공격을 받아 사망한 것이 아니라 탈수 증세로 인해 그들 스스로 잠수복을 던져버려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톰과 아일린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톰과 아일린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보트를 운전했던 선장은 불법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고 선장이 속해 있던 회사는 과실이 인정되어 벌금을 물고 폐업한다.

후에 이 사건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 2003년 오픈 워터라는 영화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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