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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 좀 살려주세요..” 대폭발은 사람들의 일상을 몇 초 만에 바꿔놓았다..

1992년 4월 21일, 부활절을 일주일 앞두고 과달라하라는 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었다. 한편 시 남동쪽 노동자 거주지 레포르마에선 이틀동안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곳의 번화가 ‘간테’에선 하수구, 욕실, 배수구에서 악취가 계속해서 나서 주민들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두통을 호소하는 주민들과 눈 통증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나오고, 고양이가 냄새를 참다 못해 토를 하는 일도 있었다. 냄새는 하수구를 타고 올라와 욕실이나 화장실에서도 났다. 맨홀 주변에선 이상한 하얀 연기가 보이기도 했다.

한편 소코로 리오스라는 또띠야 가게 주인은 가게의 부엌에서 가스가 샌다 생각해 예방차원에서 가스 회사를 불렀고, 이내 기술자 2명이 와서 가스관을 살펴 보았지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웃의 불평이 계속되자 다시 기술자를 부르고, 가스 조절기를 교체했지만 문제는 계속되었다.

오전 10시에는 맨홀뚜껑에서 연기가 관찰되기 시작했다. 오후 1시엔 냄새가 계속해서 심해지자 수도관리국에서 오염원을 찾기위해 하수도를 관찰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한편 소방대에선 사람들에게 아무일도 없을거라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냄새는 3일째 계속되던 상태였고 당국의 말과는 달리 점점 더 심해지다가 급기야 물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오후 2시에는 맨홀에서 2m높이로 가스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수도관리국에선 하수도 가스 측정결과 폭발 가능성 100%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알게 되고 간테가 밑의 하수도는 시한폭탄이란 생각에 주변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충고하지만 시 당국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으라 말한다.

주민 몇명은 걱정이 되어 쥐가 들끓는 하수도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이웃과 관계당국이 하수구 물 샘플을 조사한 결과 가솔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밤이 되고서도 수도관리국에서는 냄새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폭발 방지를 위해 가솔린을 희석시키고자 많은 물을 하수도에 투입했다. 경찰 및 소방당국을 비롯한 시 당국은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라며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4월 22일 9시 22분 레포르마에서 냄새가 난지 4일이 됐다. 주민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시 소방부장 로페스 리바스는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라디오에 나와 문제를 처리중이니 폭발 위험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 주장은 조간신문에 실렸다.

수도 관리국에선 시민들을 대피시키려 하지만 그들에겐 대피령 권한이 없었고, 대피령 권한을 가진 경찰과 소방관들은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라 말했다.

지역 주민들은 냄새가 계속해서 나자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제보 전화를 했고, 루이스 페르난도스 로사 기자가 왔다. 이후 시 당국에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대피령을 내린적이 없어서 무슨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해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오전 10시 5분,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지반을 무너뜨리고 리오 라고스가의 건물들도 무너뜨렸다. 폭발은 하수도를 따라 이어지고, 세 블록 떨어진 곳의 도로를 포함한 수많은 도로들을 집어삼켰다.

10시 6분, 구급차를 요청하는 부상자들의 첫 신고전화가 적십자에 들어왔다. 폭발은 끝없이 계속되며 10시 10분, 11시 30분에도 목격되었다. 소방서 및 적십자 구급센터에는 전화가 끝없이 왔다.

맨홀 뚜껑이 날아다니고, 집은 끝없이 무너져내렸다. 이미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폭발은 하수도를 따라 계속해서 번져나가다가 잠시 그쳤다.

그 틈을 타서 소방구조대가 나서 불을 끄고 구조를 하기 시작했으나 오후 2시 20분, 마지막 폭발이 레포르마 주 도로인 곤살레스 갈로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소방구조대와 적십자 구급대원들은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려고 고군분투했다.

폭발은 4시간 14분동안 12번 반복되며 일어났고, 칸테와 리오 브라보, 리오 닐로, 곤살레스 갈로까지 8km를 파괴했다.

뉴욕으로 치자면 월스트리트부터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가 파괴, 서울로 치자면 노원구 자체가 날아간 상황이다. 폭발의 위력또한 엄청나서 트럭이 날아가 건물 위에 올라갈 정도였다.

5시 11분, 적십자에선 170명이 죽고 최소 500여명이 다쳤다고 말한다. 부상자가 넘쳐나 모든 병원이 만원이 되고 체육관은 임시 피난처가 됐다. 적십자는 의약품과 혈액, 혈장액을 요청하고, 거대 영안실이 된 한 체육관에 시체 146구가 들어섰다.

아직도 수백명이 실종된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손으로 잔해들을 파해치며 실종자를 찾아 나섰고, 개인 불도저를 가져온 시민들도 있었으나 연락을 받은 공무원들이 와서 불도저 가동을 중단했다.

총 208명의 사망자와 1,440명의 부상자, 1만 5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나 손실 보상을 책임지던 런던 로이드서는 사망자수가 254명이며, 집 1,124채와 산업체 450채가 무너져 보상비용이 3~10억에 달할것으로 집계했다.

밤 10시에는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당시 멕시코 대통령이 재해지역에 도착해 부서진 거리들을 새벽까지 걸어가며 규모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대통령은 검찰총장에게 당장 수사에 착수한뒤 72시간 내에 보고하라 명령을 내린다.

사고 원인으로 초반에는 엉뚱하게도 지진이 원인이란 얘기가 나왔다. 과달라하라는 지진대에 속해있었고, 사고 당시 근처 지진계에 규모 3.3의 진동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진이 거리를 따라 날 수 없었기에 이 설은 폐기됐다.

이후 그동안 있었던 가솔린 냄새가 원인이라 보고 가솔린의 근원을 찾던도중 주변 40개의 공장과 화학단지중 가장 거대했던 곳인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에 초점이 쏠렸다.

페멕스에서는 회사 내의 자체검사 결과 정유공장 기기는 이상 없었다며, 자신들이 봤을때 가솔린이 아닌 헥산가스가 원인인거 같다며 근처 식용유공장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그곳서 사용하는 헥산가스는 극소량이었고, 수도관리국에서 검사당시 헥산은 검출되지 않았기에 페멕스에 다시 초점이 쏠렸다.

페멕스사에서 238km 떨어진 살라만카 지역에 가솔린을 전달해주는 가솔린 수송관이 원인이라는 설이 나와 조사에 들어간결과, 페멕스 정유공장 근처에서 가솔린이 보도를 적게한 일이 있었단걸 알게된다.

지하에서 유출된것이 틀림 없었기에 땅을 파보자 수도관이 수송관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아연도금된 수도관이 강철수송관과 반응하면서 둘다 부식이 일어나있었다.

부식으로 생긴 틈에서 새어나온 가솔린 약 60만 리터가 몇미터 거리에 있던 하수관틈으로 새어들어가 식수원에 잠입했단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과달라하라 철도를 확장하다가 선로가 하수도와 만나게 된단걸 알고는 하수도를 U자로 교체해 선로 밑으로 지나가게 하고 그곳에 펌프를 설치했는데 펌프는 액체만 내보냈고 증기 가솔린은 내보내지 못해 U자로 꺾인 하수도를 중심으로 가솔린 증기가 고이기 시작했단걸 알게된다.

고인 가솔린 증기는 하수도망을 채우고 과달라하라의 기온이 오르자 팽창하면서 맨홀로 빠져나가고 발화점에 도달한 상태에서 수도관리국이 하수도를 검사하기 위해 크로우바로 맨홀을 들어올리다가 금속과 금속이 부딪혀 생긴 불똥이 가솔린 증기에 불을 붙어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폭발사고와 관련해 시장 엔리케 다우플로재스와 페멕스 임원 4명, 수도관리국 직원 3명, 정부임원 1명이 재판을 받게됐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페멕스에선 위로금을 조금 주긴 했으나 유가족들을 만족시키진 못했고, 유가족들은 아직까지도 사건과 관련해 법정 분쟁을 벌이는 중이다.

사고후 1년에 한번씩 사고지역서 위령미사가 열리게 되었고, 페멕스사는 정유공장을 폐쇄하고 가솔린관을 도시에서 먼곳으로 옮겼다.

이후 새 하수도관이 설치되고 각종 관찰 시스템을 도입, 하수도의 가스와 독소량을 관찰해 사고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방법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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