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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을 기다리지 마세요..” 순식간에 불길이 거세져 250명의 소방관이 눈을 뜨고 바라보고만 있어야됐다는 72명의 마지막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었을 밤시간 24층 높이의 건물에는 수백 명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갇혀버린다.

영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슬럼가 정리 사업의 일환으로 저소득 정착지를 고급주택 또는 비즈니스 타워로 개발하였다.

하지만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사업이 지연되었고 이후 1960년대 들어 사업이 재개된 후 여러 공공주택이 건설된다.

런던의 서쪽 지역에 위치한 노스켄싱턴, 영화 노팅힐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지역은 유독 서민층과 실직자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어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공공임대주택 개념의 주택 단지가 많다.

그 중 하나였던 랭케스터 웨스트 에스테이트는 1960년대에 설계되어 1974년에 완공된 공공임대주택 단지로 그렌펠 타워라는 24층 높이의 주거용 타워와 900개 동으로 구성된 주택 단지이다.

2017년 6월 13일 밤 23시 45분경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와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그렌펠타워 4층에 거주하고 있던 베하일루 케베데는 우버 기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00시 50분경 케베데는 자신의 매트리스에 누워 잠에 들기 전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재 경보기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에 케베데는 소리를 따라 부엌으로 향한다.

그가 부엌 문을 열자 냉장고 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케베데는 즉시 구조대에 전화를 걸어 신고하였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는 같은 층에 살고 있던 에티오피아인, 소말리아인, 수단인 등 이웃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화재 사실을 알렸고 혹시 모를 2차 사고를 대비해 복도에 있던 전기 차단 장치를 내린 후 건물 밖으로 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화재는 케베데의 집 안 부엌에서만 퍼지고 있었고 건물의 다른 구역으로는 번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새벽 1시경 신고를 받고 두 대의 소방차를 끌고 도착한 소방관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자신의 찬 모습으로 케베데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후 현장으로 올라간다.

1시 9분경 부엌 창문을 빠져나온 커다란 불길이 건물을 타고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 사실을 인지한 고층의 주민들은 창 밖으로 몸을 빼낸 채 도와달라며 손을 흔든다.

순식간에 불길이 위로 옮겨 붙어 확산되자 심각성을 느낀 소방관들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100미터 이상 멀리 떨어지도록 하였고 물을 발사할 수 있는 소방차와 추가 장비를 본부에 요청한다.

1시 15분경 이제서야 화재의 시발점인 부엌으로 진입한 소방관들은 그곳의 불길을 진압하기 시작하였지만 이미 불길은 건물 외부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고 동시에 불에 타버린 파편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같은 시각 건물 안에는 약 290명의 거주자 중 34명만이 탈출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1시 30분경이 되었을 때 불길은 건물을 감싸듯 측면으로 타고 올라가 옥상에 도착하였는데 다행히 라마단 기간이라 깨어 있던 무슬림들과 화재 경보기 덕에 110명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건물 안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고 주변 지역으로 수십 대의 소방차와 경찰 그리고 구급차들이 몰려들었다.

1시 42분경 외벽에 창과 창 사이의 패널을 따라 이동하던 불길은 이제 타워의 북쪽으로 번지기 시작하였고 이후 동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사방으로 번져갔다.

새벽 2시가 다 되었을 때 추가적으로 20명이 더 탈출하였지만 이 시점에서 건물 내부에 갇혀 있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 타워의 동쪽 전체가 불길에 완전히 먹혀버렸다.

구조는 계속되어 오전 4시경이 되었을 때, 48명의 인원들이 추가적으로 구조되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4층 위의 구역은 내부의 검은 연기가 굉장히 짙은 상태로 시야 확보가 불가능에 가까웠고 거기다 화재로 인한 열기로 굉장히 뜨거운 상태여서 여전히 접근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실 그렌펠타워는 불이 잘 번지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화재 발생 당시 주민들에게 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을 권고하였는데 화재 진압 실패로 인해 이 매뉴얼이 폐기되었고 이로 인해 뒤늦게 소방관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탈출하라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는다.

오전 8시경 결국 24층의 건물 중 12층까지만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위에 고층은 당장 진입 자체가 불가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불타오르던 불길은 화재 발생 24시간을 꼬박 넘긴 6월 15일 새벽 1시경이 되어서야 대부분 진압되었다.

사건 이후 조사관들은 냉장고의 결함을 화재의 원인으로 보면서도 불길이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번진 것에 주목하였는데 이는 2016년에 진행했었던 그렌펠타워의 보수 공사에서 ACM이라는 고인화성 알루미늄의 외장재가 건물에 설치되었는데 이 외장재는 고온에서 잘 녹고 잘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이로 인해 불길이 더 크고 빠르게 이동한 것으로 보았다.

거기다 창문에도 가연성 재료가 사용된 것이 확인되는 등 건물 자체가 화재 예방에 굉장히 적합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이 사고로 인해 총 72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이 중에는 6개월 된 아기와 각각 2살, 3살, 5살 등 다수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기간 그렌펠 타워에 거주했던 케베데는 이제 타워의 주거 공간을 실소유로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준비 중이었으나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케베데는 초기에 건물을 빠져나올 때, 실수로 현관 키를 두고 나와 다시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에게 화재 사실을 빨리 알리지 못했다며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편 희생자와 생존자의 가족들은 그렌펠타워의 보수 공사를 맡은 자재 회사를 상대로 2019년에 민사소송을 제기하였고, 화재가 발생한 그렌펠타워는 현재 덮개로 가려진 상태로 철거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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