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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상) 오스트리아 최악의 터널 화재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15명의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오스트리아 동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키츠슈타인 오른산 해발 3,203m의 키츠슈타인호른은 지리적으로 스키를 타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어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각국의 스키어들에게 인기가 좋은 장소다.

키츠슈타인호른산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산에 빙하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소도시 카프룬에서 기구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1965년부터 산으로 향하는 기구의 운행을 시작해 1974년이 되었을 때 푸니쿨라라는 케이블카가 설치된다.

당시 카프룬에 설치된 푸니쿨라는 글레처반 2라는 자체 엔진이 없는 열차로 견인노프와 도르레를 이용해 이동하는 철도의 일종이었는데 열차는 카프룬에 설치된 역에서 출발해 3.9km를 달려 알파인 센터까지 운행하는 코스였고 3.9km의 길이 중 3.3km를 터널로 이동하였다.

2000년 11월 11일 이른 아침 스키를 타러 가려는 탑승객들은 열차를 타기 위해 카프룬마을 남쪽에 위치한 역으로 모여들었다.

열차는 산을 오르기 위해 약 26도로 경사진 상태로 멈춰 있었고 탑승객들은 계단을 통해 경사진 열차에 탑승한다.

오전 9시 2분경 역을 출발한 열차는 시속 24 ~ 30km로 달려 역으로부터 약 600m 위에 위치한 조그마한 터널 입구로 향하였고 터널 안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열차는 전원 공급이 되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에 브레이크 작동과 출입문 개폐를 위한 유압 시스템 그리고 조명과 통신 장비를 위한 전기 시스템만을 갖추고 있었다.

터널 안으로 진입한 열차는 계속해서 목적지를 향하여 경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때 열차의 내부 장비에서 유압유가 누출되기 시작한다.

유압유가 누출된 부분은 열차 제어실에 있는 운전석 좌측 하단에 설치된 간이 난방장치와 가까운 곳이었는데 이때는 이미 난방 장치에 연결된 금속 부품의 온도가 유압류를 점화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높은 상태였고 이로 인해 열차 내부에 가연성 물질에 불이 붙어 유압라인을 타고 빠르게 불이 번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운송 파이프가 절단되며 유압류가 흘러나와 화재 속에 계속해서 기름을 공급해주는 꼴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화재의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고, 열차가 터널 안으로 약 500m 이상 진입하였을 때 설치된 안전 장치에 의해 열차가 자동으로 멈춰섰다.

같은 시각 당시 열차는 케이블카 형식이었기 때문에 1개의 철도를 두고 2대의 열차가 동시에 움직이는 형태였고 경로 중간에 열차가 서로를 피해 지나갈 수 있는 구간이 있었는데 앞서 카프룬에서 열차가 출발할 때 목적지인 알파인 센터에서도 동시에 열차가 하강하기 시작하였다.

카푸른에서 출발한 열차가 화재 때문에 자동으로 멈춰서자 하강하던 열차 또한 터널 안으로 들어온 채로 멈춰 서게 된다.

열차가 멈춰 선 후 화재는 곧 승객들이 있는 객실로 빠르게 넘어오기 시작했는데 화재를 인지한 승객들이 문을 열고 탈출하려 했지만 화재로 인해 터널 안에 전기 시스템이 파괴되며 락이 걸린 상태였고 사고 예방을 위해 아크릴로 막아둔 창문 때문에 오히려 탈출을 못하고 열차 안에 갇힌 상황이 된다.

오전 9시 7분경 엄청난 연기 속에서 스키장비로 창문을 부수던 승객들 중 12명의 승객이 창문을 부수고 열차를 탈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경력이 풍부한 한 명의 소방관이 있었다.

그는 탈출한 사람들을 이끌고 암흑에 가까운 어둠 속에서 엄청난 연기를 피해 철길을 따라 아래로 빠르게 이동하였는데 이때 그는 열차의 차체에 불이 옮겨 붙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들 외에도 열차의 앞부분 승객 중 일부가 탈출에 성공해 터널을 나가기 위해 위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출구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들은 빠르게 따라온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다.

그리고 이 연기는 경사진 터널에 바람을 타고 올라가 터널 끝에 연결된 역을 덮쳤는데 당시 통로 밖으로 날아온 연기의 압력이 워낙 강해 창문이 깨질 정도였다.

그리고 하강 중 멈춰 선 열차에는 단 한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는데 그들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무전으로 화재를 인지하였지만 추후 열차의 승무원은 조종실에 갇힌 채 발견되었고 한 명의 승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리막으로 내려가는 길에 누워 질식한 채로 발견된다.

9시 15분이 지난 시각, 결국 신고를 받고 소방관들이 출동하였지만 화재가 일어난 위치가 워낙 폐쇄적인 데다가 터널 안에 엄청난 연기와 열기 때문에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고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지원을 온 헬기를 이용해 역 중간 지점과 위쪽 알파인 센터로 이동해 구조를 시도한다.

가까스로 터널 안으로 진입한 구조대는 그곳에서 끔찍하고 안타까운 광경을 보게 되는데 터널 위쪽 출구로부터 약 60m미터를 남겨둔 지점에 탈출을 시도하다 질식해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 약 70구의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이날 열차 안에 타고 있던 161명의 승객과 한 명의 차장 중 초기에 소방관과 함께 탈출한 12명을 제외한 전원이 세상을 떠났고, 알파인 센터에서 하강을 하던 열차 안에 2명과 알파인 센터 역에 머무르고 있던 3명을 포함해 총 155명이 운명을 달리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수습 작업은 현장 접근이 어려워 다음날로 미뤄졌고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된 수습 작업을 통해 각각 특수 제작된 가방에 담겨 카트로 운반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 소방관은 TV 방송국으로부터 현장 사진을 찍어달라는 은밀한 부탁을 받았고 그는 약 44만 달러를 받고 열차의 잔해와 현장의 참혹함이 담긴 사진을 찍었다.

사건 이후 사실 열차의 제어실에 난방 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열차 승무원들의 요구에 따라 추가로 일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용도에 맞지 않는 욕실용 난방 장치를 설치하였고 과열 방지 장치가 제거되어 있는 등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어 있는 난방장치를 사고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리고 당시 열차 운행의 주체인 글레처바넨 카푸르AG의 경영진 등 총 16명의 사람들이 기소되었지만 2004년 2월 19일 화재를 일으킨 조건에 부합하는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받는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이어진 개별 소송 끝에 약 450명의 사건 희생자의 친인척들은 1690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받으며 더 이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현재 사고가 발생한 카프룬 지역은 모두 폐쇄된 후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역의 흔적은 남아 있다고 한다.

✅ 사고현장 실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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