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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실화) 원숭이와 인간을 교배시켰던 미친 과학자, 휴먼지 프로젝트의 결과…

20세기 초 이바노프는 동물의 품종 개량이나 인공 수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가진 과학자였습니다. 이바노프가 말을 인공 수정하는 데 성공한 이후 명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1901년 이바노프는 종마 한 마리로 최대 500마리의 암컷말을 임신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1913년까지 약 7천 마리에 달하는 말을 인공 수정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연적으로 교배했을 때 종마 한 마리당 암컷말을 임신시킬 수 있었던 최대량이 약 20마리에서 30마리였던 것에 비하면 가의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바노프의 실험 주요 거점 주변에는 전 세계에서 온 사육사들의 방문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이바노프는 인공수정 실험에 성공한 덕에 아스카니아 노바 자연보호구역의 연구원 자격이나 국립 수의학 연구소의 연구원에 이어 모스크바 중앙가축번식 연구소의 초대 소장직까지 받게 됩니다.

사실상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윤택하고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간 것이죠. 하지만 이반오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공 수정에 성공한 이반오프는 이종 교배라는 분야에 착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섰던 건 아니고 동물들로 이종 교배를 시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기니피그와 쥐 그리고 얼룩말과 당나귀 등의 수많은 동물을 가지고 연구를 했죠.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이바노프는 1910년 호주에서 열린 동물학 회의에서 유인원과 인간의 교배가 가능할 것 같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열띤 토론이 이어졌으나 이바노프에게 ‘괴짜’라는 타이틀이 붙는 데 그쳤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없었으니까요. 시간은 흘러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 정권이 들어서면서 엄청난 격동이 일어났지만 이바노프의 꿈은 굳건했습니다. 오로지 유인원과 인간의 교배에만 집중하고 있었죠.

1924년 이바노프는 반인반원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부를 찾아갔습니다. 이때 이바노프는 연설에서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가 95% 이상 일치하고 염색체의 개수가 48개로 동일하다는 등의 이론을 가지고 반인 반원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인간의 염색체가 46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만 저 당시에는 모두가 인간의 염색체는 48개로 잘못 알고 있었죠.

인간의 염색체 개수가 48개가 아닌 46개로 알려진 것은 1956년 조 힌치오가 발표한 인간의 염색체 숫자라는 논문 이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는 이바노프의 주장이 꽤 그럴 듯 해보였습니다.

다만 이바노프는 앞서 괴짜 취급을 받은 이력이 있었기에 이론만을 가지고 정부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실제로 과학자들의 반대가 잇따르기도 했고요. 그래서 여기에 정치적인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인간과 유인원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는 다윈의 이론을 증명하는 셈이며 소련의 유일한 정치적 경쟁자인 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이죠.

이반노프의 계획은 반신 사회를 원했던 소련을 설득하기에 충분했고 정부의 실험 승인과 동시에 자금도 지원받게 됩니다. 그렇게 이바노프의 ‘휴먼지 프로젝트’라 불리는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비인간적인 실험이 시작됩니다.

1927년 이바노프는 아프리카에서 암컷 침팬지를 구해다 소련으로 가져왔습니다. 첫 실험은 인간 남성의 정자와 암컷 침팬지에 난자간 인공 수정이었고 당연히 실패했죠.

이후 인간의 난소를 침팬지에게 이식하고 수정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포기를 몰랐던 이바노프는 방향을 바꿔보기로 결정하고는 인간 여성과 유인원 간의 인공 수정을 시도해보기로 합니다.

침팬치의 정자를 구한 이바노프는 여성 지원자를 찾아다녔습니다. 이걸 누가 자원하겠냐 생각하실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 누구도 유인원과의 교배를 원하지 않았죠.

여기서 이바노프는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령 기니에 거주 중인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건강검진이라 속이고 실험을 진행하자는 계획이였습니다. 심지어 소련 과학연구소의 동의가 없었던 독단적인 계획이었습니다.

실험은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총독의 거부로 진행되진 않았지만 이바노프가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게 보이는 대목이였죠. 이바노프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20마리의 수컷 유인원만을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여성 자원자들을 찾아다녔죠. 아무도 자원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실험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섯 명의 여성이 참여하면서 실험이 진행됩니다. 이들이 어떤 계기로 참여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수감자였다는 것은 밝혀졌습니다.

그는 5명의 여성을 상대로 인공을 수정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 역시 실패했고, 오랑우탄들도 결국 극심한 환경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어렵게 구한 여성 지원자들을 두고 포기할 수 없었던 이바노프는 서둘러 다른 유인원을 찾으러 다닙니다.

새로운 유인원을 들여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꼬리가 너무 길었습니다. 결국 이바노프가 동의도 없이 인간 여성을 수정하려는 사실이 과학자들의 귀에 들어갔고 모든 지원이 끊어지고 말았죠.

그리고 1927년 파리의 한 신문에 인간 여성을 침팬지의 정자로 수정하려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이바노프는 엄청난 질타를 받게 됩니다.

이후 1930년 소련의 정치적 변화 과정에서 여러 과학자들이 숙청되던 시기 이바노프 또한 숙청의 희생자가 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죠. 이듬해 석방되긴 했지만 1932년 자신이 태어나지도 여생을 보내지도 않은 타국에서 뇌졸중으로 인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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