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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까지 났다고”… 용을 믿지 않는 사람까지 믿게 만들어버린 실제 용 추락 사건

용은 먼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져 내려오는 환상 속의 동물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용은 같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차이점들이 많은데요.

외적인 모습 말고도 기록적인 부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죠. 서양의 드래곤은 주로 전설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허구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동양의 용은 마치 실제 존재했던 것인 마냥 세세하고 구체적인 기록이라는 것이 특징인데요.

용과 관련된 기록은 동양 중에서도 특히 한중일 세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중국은 이러한 용기록이 유독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원년 유월 북극 문명전 동쪽들의 용이 떨어졌다. 색깔은 검은색으로 몸 길이가 30m가 넘었다.”

“9일 동안 머물다가 떠났는데 이를 기려 그 자리에 사찰을 세웠다. 동성현 경내에 청룡이 추락했는데 목 부위에 상처가 생겨 즉사 길이는 30m에 달했고 몸의 길이와 꼬리의 길이가 같았다.”

“꼬리는 납작한 형태로 물고기의 것과 비슷한 비늘이 붙어 있었다. 머리에 두 뿌리 있고 입수염이 달려 있었으며 배에 달린 발의 발톱 사이에는 붉은색 막이 있었다.”

“광동 신의연 해변에서 용 한 마리가 떨어져 어민들에게 산채로 맞아 죽었다. 몸 색은 푸르고 배만 붉은 색을 띄었다.”

“금단 학궁 앞에 용 한 마리가 잡혔는데 그 비린내가 아주 심하여 코에 거슬렸다. 비닐은 해바라기 부채와 같았다. 용이 롼허 하류에 러팅현 경내에 내려 앉았다.”

“마을 주민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물을 뿌려주니 사흘 후 큰 뇌우를 일으키고는 자리를 떠났다.”

“태백 호변에서 용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긴 수염과 높은 두 뿔을 가지고 있었으며 흰 배에 등은 푸르고 지느러미와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몸에는 큼지막한 비늘들이 가득했는데 그 비린내를 몇 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군중들은 돗자리로 용을 덮어주고 관청에서는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같은 날 밤 뇌우가 몰아친 후 용이 사라졌다. 용이 있던 자리에는 깊은 도랑이 하나 남았다.”

이러한 기록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실제 중국의 고문원에는 용에 관련된 글들이 아주 많은데요.

이러한 기록은 20세기까지도 이어졌죠. 1934년 7월 중국의 랴오닝성 잉커우시에 40여일간 비가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요화강의 수위가 급등하였고 요하 북안 인근에 갈대밭이 물바다가 되었는데요. 비가 그친 후 북안 사람들은 갈대밭에서 동물의 사체가 썩는 듯한 악취를 막게 됩니다.

원인을 찾고자 갈대밭을 해집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 있는 용을 발견하였죠.

“용은 두 개의 뿔, 황소를 닮은 코, 4개의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몸 크기는 커다란 말 정도 되어 보였으며 몸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다.”

“용이 기력이 다해 날지 못하자 사람들은 천막으로 그늘을 만들고 물을 부어주었다. 승려들도 합세하여 용이 기운을 차리는 것을 도왔고 며칠 뒤 큰 비가 한 번 내리더니 용이 날아 사라졌다.”

목격은 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용으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8월 초 랴오허강 인근의 마을에 다시 나타난 것인데요.

“용이 나타나 어선 3척과 공장 건물을 파손하였으며 역에서는 열차를 뒤집어 9명을 숨지게 하였다.”

기운을 차린 용이 자신을 다치게 만든 이들 혹은 마을에 복수를 한 것일까요? 이 정체불명의 동물은 그 뒤로 한 번 더 목격이 되었습니다.

“용이 세 번째 발견되었을 때 그것은 갈대밭에 죽은 채로 썩어 있었다. 더위로 인해 살이 모두 문드러져 용골만 남아 있었다.”

용에 대한 기사를 내보낸 중국의 성경일보는 발견된 용골의 모양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용의 머리는 마치 가옥과 같은 3판의 뼈로 둘러싸여 있었고, 등뼈의 너비는 3촌 여(약 7~9cm) 척추의 양쪽에는 각각 길이가 5~6촌(약 15~18cm) 정도 되어 보이는 갈비뼈가 붙어 있었다.

꼬리뼈는 수직 판 모양으로 총 28단이었으며 꼬리의 길이만 10m에 달했다. 용이 발견된 곳에는 발톱으로 파낸 듯한 깊은 구덩이가 있었으며 구덩이를 따라 발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용골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용의 힘줄도 볼 수 있었다. 성경 일본은 해당 기사를 내보내며 사진까지 하나 실었는데요.

사진 속에는 4~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괴생명체의 뼈가 찍혀 유독 커다란 머리에는 두 개의 뿔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사진을 포함한 용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사람들은 곧장 용을 보기 위해 잉커우로 몰려들었는데요.

이로 인해 1934년 여름 잉커우의 기차표 값이 일시적으로 치솟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죠.

이후 용의 뼈는 잉커우 제6 경찰서에 의해 수거되어 서해안 부두 근처의 공터에 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시는 오래가지 못했는데요.

일본과의 전쟁 시기였던 탓에 해당 뼈가 일본 측에 의해 훼손 반출된 것이죠. 현재까지 그 용골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괴생명체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의 고문원들에 기록된 것과 같은 낙룡 사건이었을까요?

이에 대해 10년간 용을 연구한 중국의 학자 마샤오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을 신화라고 생각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10년 간의 연구 결과로 얻은 내 결론은 용은 한때 존재했고 사람들에 의해 신격화된 희귀 동물이라는 것이다.

여러 문헌들 뿐만 아니라 사마천의 사기에도 하대에 용을 기르는 사람을 두고 어룡씨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마샤오싱은 용이 만약 신격화 되었던 희귀 동물이라면 그에 따른 과장 역시 존재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뇌우를 몰고 비를 내렸다는 것도 그러한 요소의 일부분이며 이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이거나 용이라는 동물이 좋아하는 날씨 습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였죠.

개구리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는 것인데요. 기록들을 살펴보면 비늘을 가지고 있고 지느러미와 물 갈기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하며 비린내가 난다는 것으로 보아 물과 아주 친근한 동물임에는 확실해 보이죠.

어쩌면 용은 과거에 정말 존재했던 희귀하고 진귀한 동물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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