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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사람 따로 있다는거 이제 이해가 되네요…

하루종일 머리가 멍해서 아무 생각도 안들고 일도 손에 안 잡혀서 결국 오후 반차를 쓰고 나와서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쓰네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하하하….. 웃기기만 하고 이게 맞나 싶고 꿈같고 그러네요.

햇수로만 12년 연애했어요. 대학교때 만나서 서른 중반이 되는 지금까지요.

중간에 군대 다녀오는거 다 기다리고 워킹홀리데이 1년반 보이스톡도 없던 시절에 전화랑 편지 써가면서 기다렸고

남들 졸업하면서 다 딴다는 전기기사 자격증 하나 못따서 졸업하고도 3년을 빌빌대는걸 어르고 달래서 시험 다 치게하고

자소서 첨삭부터 주말마다 만나서 면접 예행연습 예상질문 다 뽑아서 연습시키고 데이트 비용 다 내가면서 꼴에 자존심 살려준다고 커피값 낸다고 하면 부담될까바 아아만 먹었어요.

2천원짜리 커피 마시면서 그렇게 만나도 행복했어요.

남들은 다 우리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고 저희도 그렇게 믿었어요. 이젠 저만 그렇게 믿었던거 같지만요.

그 사람 지인이 전부 내 지인이고 모든 지인들 결혼식 사진에는 항상 같이 들어가 있었는데 남자친구 부모님, 형 다 너무 자주 뵈어서 이미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엄마가 맛있는 음식 할때마다 놀러오라고 하셔서 밥 먹고가고 코로나 터진 뒤에는 주로 저희집에서 만나서 밥먹고 놀다가고 그랬는데

언젠가는 식만 올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요?

12년을 만나도 만날때마다 즐겁고 좋은건 저뿐이었을까요. 지쳐가고 질려가는 그 사람을 저만 못보고 있던 걸까요?

결혼얘기 꺼낸지 2년 가까이 그렇게 밥먹는 날 한번 잡는걸 어려워 했을 때 알았어야 했었는데..

그냥 워낙 귀찮아하는 성격이다보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난주에 알았어요.

어머님 지인 통해서 소개받으신 분하고 만나고 있던걸… 그 분은 약사시래요. 어머니가 억지로 나가래서 나갔다가

연락만 하고 있던거라고 하더니 사귄지가 반년이 다 되어가는 거였어요.

그래도 끝까지 헤어지자고 하지 못하고 미안하다고만 하는데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욕도 화도 못내고 그냥 그렇게 나왔어요.

저만 모르고 있었나봐요. 연애할 사람 결혼할 사람 다른건데 저만 혼자 꽃밭에 서 있었나봐요.

남들은 집 짓고 있는거 구경만 하면서 붙잡을 연락이라도 올 줄 알았어요. 전화 한 통 카톡 한 개 오질 않는 휴대폰을 보면서 너무 실감이 안나서 눈물이 안나요.

저는 이제 누굴 찾아서 만나서 연애를 또 하고 알아가다가 결혼을 해야할까요?

내 가장 꽃다운 나이에 모든 젊은 시절과 행복과 슬픔을 함께했던 사람은 이제 없는데. 저는 이제 누군가한테 더 줄 마음이 남은게 없는데.

방 한가득 주고받은 선물들과 사진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와중에도 밉다는 생각이 안 드는게 왠지 다시 돌아올거 같아서 나 아니고 누가 너를 책임지냐 라는 12년동안 내가 그사람한테 주입시켜왔던 말에 저조차도 세뇌되었었나봐요.

인생은 로맨스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걸 30여년만에 알게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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