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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사진)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고통없이 죽었다는 다이빙벨 감압사고

감압실에서 대기 중인 다이버들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 다이버가 감압실로 들어온다.

그 순간 그들은 순식간에 전신이 찢겨져 나가 즉사해버린다. 다이버 사고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여겨지는 바이포드 돌핀 감압사고, 이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잔혹하면서도 가장 고통이 없었던 사고로 꼽힌다.

바이포드 돌핀은 북해의 노르웨이, 영국, 덴마크 등 해당 지역의 회사들이 사용하는 심해 드릴링을 위한 시추 장치이다. 당시 바이포드 돌핀은 무려 6,100미터 깊이까지 드릴링이 가능한 엄청난 장비였는데 이 장비를 원활히 돌리기 위해서는 백 명이 넘는 작업자들이 필요했고 그들은 각자의 포지션에서 완벽한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바다에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장비의 유지 보수를 위해 바다 속에서 작업을 하는 다이버들의 역할도 중요하였는데 다이버들은 심해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다이버들은 물 속 깊은 곳으로의 탐험을 할 때 일정 구간마다 감압 정지를 거치며 물의 압력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심의 작업을 위해 해당 다이버들은 미리 준비된 감압실과 다이빙벨을 활용해 업무를 했는데 감압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르는 동시에 해당 공간의 압력을 서서히 높여 체내의 압력을 서서히 올려주는 식이었다.

업무를 모두 마친 후에는 반대로 감압실에 압력을 서서히 내려 지상에 알맞은 압력의 상태로 체내 압력을 낮춰주는데 모든 과정의 마무리는 시야에서 작업을 마친 후 고압의 상태로 다이빙벨을 타고 수면으로 올라온 뒤 심해의 압력으로 세팅되어 있는 감압실의 다이빙벨을 도킹시킨다.

그리고 절차에 따라 무사히 도킹이 완료되면 다이버들은 감압실로 이동해 위에서 설명한 감압의 과정을 거친 뒤 밖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1983년 11월 5일 토요일 새벽 4시경 북해 노르웨이의 프리그 가스전에는 시내에서 일하고 있는 두 명의 잠수부가 있었다.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중 악천우를 이유로 수면으로 복귀를 하게 되었고 이들은 다이빙벨을 타고 곧장 지상으로 복귀한다.

다이빙벨과 감압실의 도킹 작업은 각각 문이 달려 있는 트렁크를 통해 연결이 되는 형태였고 먼저 다이빙벨을 타고 시야에서 수면으로 올라온 잠수부들이 트렁크를 통해 감압실로 건너가면 다이빙벨 문을 봉쇄한다.

그리고 다이빙벨의 압력을 조금 높여 문을 단단히 닫은 뒤 트렁크에 연결되어 있는 감압실의 문 또한 단단히 닫아준다. 이후 트렁크의 압력을 1기압까지 서서히 낮춰준 후 트렁크를 밀봉하고 있던 클램프를 열어 다이빙벨을 분리하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러한 도킹과 분리해 일련의 과정을 돕는 작업자들을 다이브 텐더라고 불렀는데 당시 윌리엄 크레먼드와 마틴 손더스라는 두 명의 작업자가 이 업무를 맡고 있었다.

좌: 다이버 1 / 우: 윌리엄 크레먼드

당시 감압실에는 시야에서 복귀한 잠수부들을 포함해 총 네 명의 잠수부들이 있었다. 감압실의 압력은 9기압의 높은 압력을 유지 중이었고 아직 감압실에 문을 단단히 닫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타이브 텐더 중 한 사람인 윌리엄 크래먼드가 무슨 이유에선지 트렁크를 밀봉하고 있던 클램프를 열어버렸고 선행 절차가 무시된 감압실은 순식간에 9기압에서 1기압으로 폭발성 감압이 된다.

이로 인해 감압 실내에 네 명의 잠수부와 클램프를 열었던 윌리엄 크래먼드가 사망하였고 또 다른 다이브 텐더였던 마틴은 목숨은 건졌지만 중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사망자들의 상태가 굉장히 잔혹하였는데 먼저 클램프를 열었던 윌리엄 크래먼드는 폭발적으로 압력이 배출되며 튕겨져 나온 다이빙벨에 부딪혀 사망하였고, 비교적 감압실에 안쪽에 있던 세 명의 잠수부는 급격한 감압으로 인해 눈 깜짝할 새에 피가 끓어 즉사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잠수부였던 노르웨이 출신의 트루스 헬레빅은 굉장히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당시 감압실 문 쪽에는 약 60cm의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구멍이 있었고 폭발성 감압에 가장 가깝게 노출된 헬레빅은 이 60cm의 작은 구멍을 통해 강제로 뽑혀 나가게 된다.

그 압력으로 흉부를 비롯한 신체의 대부분이 파편화되어 찢어졌고 일부 기관을 제외한 신체 내 모든 장기가 몸 밖으로 튀어나와 여기저기로 투사되어 버렸다.

추후에 밝혀진 사실로는 당시 장비의 안개와 결함 그리고 감압실 내의 잠수부들과 외부에 있던 다이브 텐더와의 소통에 오류가 있었음을 사고의 원인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였으나, 사고를 당한 잠수부 가족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사건 발생 26년 만에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았다.

🔞 혐오스러울 수 있는 실제 사진이 포함될 수 있으니 노약자 및 임산부는 주의바랍니다.

실제사고 사진

출처: 전세계 비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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