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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이 붕괴되면서 생긴 43m 높이의 쓰나미로 인해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태평양까지 떠내려간 431명의 마지막 순간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건설되고 있는 댐, 댐의 저수지에는 곧 물이 가득 찼고 이제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댐이 붕괴되며 홍수가 일어났고 이 홍수는 20세기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위치한 로스앤젤레스 1800년 후반부터 물이 부족했던 이 지역은 모자란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오엔스강으로부터 물을 끌어와 사용하였는데 특히 1900년대 들어 수도국을 설립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수로가 만들어졌다.

이 수로는 375km 거리까지 물을 끌어올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로스앤젤레스 시에서는 신선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당시 수도국의 전문 엔지니어였던 멀홀랜드는 가뭄이나 지진 발생 시 수로가 파손될 것을 우려해 미리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더욱이 당시 로스 앤젤레스의 인구는 1900년도에 10만 명이었던 것이 1910년이 되었을 때 32명을 넘겼을 정도로 빠르게 불고 있었다.

거기다 물을 끌어오던 오엔스 강 인근의 농부들은 강에 물이 줄어 자신들이 사용할 물이 없어지자 수로의 일부를 폭파하거나 편법을 사용해 도시로의 물 공급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이런 이유로 멀홀랜드는 굉장히 큰 규모의 저수지를 계획하였고, 1924년 8월 지형 조사를 마친 그는 로스앤젤레스 시내로부터 64km 거리의 산맥에 65m 높이의 댐 건설을 시작한다.

그런데 댐이 완성된 후인 1926년 3월부터 지속적으로 댐에는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당시 댐은 저수지에 물을 채우기 시작해 점점 수위가 상승하고 있었는데 이때 댐의 일부분에서 수직 균열이 발생하고 누수가 일어나 멀홀랜드를 비롯한 담당 엔지니어들이 이를 조사하였지만 그들은 콘크리트 댐에 대한 예상 균열 범위 내에 있다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위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댐의 여러 부분에서 계속해서 누수와 균열이 발견되고 있었는데 그러던 1928년 3월 12일, 물을 채우던 중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댐을 관리하던 담당자는 이전에 보완했던 지점에서 재차 누수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여 이를 처리하기 위해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 유출수의 색깔은 갈색이었고 이것은 댐의 기초 부분이 침식되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 사실을 긴급히 멀홀랜드에게 알린다.

하지만 급히 현장으로 온 멀홀랜드와 엔지니어는 이 또한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하였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은 물의 흐름이 심상치 않음이 느껴지자 나중에 댐의 일부를 보완해야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11시 58분경 물을 가득 채우고 있던 댐은 갑자기 붕괴하기 시작해 엄청난 홍수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쏟아져 내린 470억 리터의 물은 수많은 잔해와 사람들을 태평양으로 쓸어버렸다.

그리고 당시 붕괴 10분 전에 현장 근처를 지나간 한 남성은 바위가 언덕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였는데 단순한 산사태라고 생각한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현장에서 떠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댐에 저장되어 있던 470억 리터의 물은 몇 초 만에 댐의 중앙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을 붕괴시켰고 순식간에 협곡 아래로 쏟아져 내렸는데 이때 붕괴된 댐 조각 중 만 톤에 달하는 조각이 댐으로부터 1.2km 거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댐에서 400m 거리에 있던 오두막에는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초기에 발생한 43m 높이의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뒤 집 안에 있던 여성은 근처에서 발견되었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댐이 붕괴된 지 약 5분이 지났을 때, 홍수로 인한 파도의 높이는 37m에 달했는데 이후 시속 29km의 속도로 계속해서 이동한 파도는 인근 마을을 완전히 지워버렸고 인근의 강으로 많은 물이 유입되면서 추가적인 범람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발전소가 피해를 입어 주변의 도시들은 대부분 정전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더욱 무방비 상태가 된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집 안에 머무르던 모습 그대로 물에 휩쓸려 갔다.

이제 홍수는 시속 19km로 속력이 약간 줄은 상태였지만 계속해서 아래로 쓸고 내려가는 중이었고 같은 시각 댐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는 임시로 만들어 둔 건설 캠프가 있었는데 그 안에 있던 150명의 사람들은 역시나 영문도 모른 채 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결국 홍수는 근처에 있던 3개의 지역을 엄청나게 훼손시킨 뒤 수많은 잔해와 사람들을 머금은 채 84km 거리에 태평양으로 유입되었고 이때까지도 홍수의 속도는 시속 9km에 달하였다.

사건 이후 사고 발생 지역은 평소에도 지진이 수시로 발생하는 캘리포니아였기 때문에 조사관들은 우선적으로 지진을 유력한 원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엔지니어들과 지질학자들이 참여한 조사 결과 댐은 설계 결함에 의해 붕괴가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건설 초기부터 기초 공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초기에 댐의 서쪽 부분에서 붕괴가 시작된 뒤 이곳을 비집고 쏟아져 내린 물의 세도로 인해 댐의 전체 부분이 조각조각 붕괴되어 엄청난 양의 물이 하류로 쏟아져 내린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댐 하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빠르게 밀려든 홍수에 휩쓸려 사라졌는데 사고 직후 수습된 인원들은 총 385명이었으나 1950년대까지도 매년 몇 구씩 계속해서 발견되었고 그들 중 일부는 해안가 근처나 멕시코 국경에서 수습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실종자들의 유골은 매년 계속해서 발견되어 사건이 발생한 지 66년이 지난 1994년까지 모두 431명이 수습되었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인원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재난이 모두 지나간 뒤 댐을 초기부터 설계하고 계획했던 멀홀랜드는 이 참사가 발생한 것에 책임을 느껴 1928년 12월 1일부로 수도국에서 은퇴한다.

한편 로스앤젤레스 시는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기업에게 수백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였고 이 사건은 20세기에 발생한 미국의 사건 사고 중 최악의 토목공학 재해로 기록되었다.

✅ 당시 실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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