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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압사사고) 좁은 길목에서 몇겹으로 쌓인 압사 참사 사고 2400명의 마지막 순간

성지 순례를 위해 모여든 무슬림들 이들은 매년 특정 기간이 되면 한 곳에 모여 정해진 코스로 순례를 떠난다. 그런데 그때 좁은 길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계속해서 밀려드는 사람들에 의해 몇 겹씩 갈리게 된다.

무슬림이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알라라는 창조주 외에는 다른 어떤 존재도 숭배하지 않는데 이런 무슬림들에게는 평생의 목표와도 같은 의무사항이 있다.

그들은 매년 의무적으로 라마단이라는 일종의 금식 기간을 갖는데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날이 밝을 때 금식을 하고 예배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신체적 경제적 여건이 되는 무슬림들에게는 매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행해지는 성지순례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지는데 이는 무슬림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임무 중 하나이지만 매년 성지 순례를 위해 모여든 수백만의 인파로 인해 압사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2015년 라마단 6월 14일에 시작해 7월 16일 목요일에 종료된 라마단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금식과 예배 활동을 이어갔는데 이후 같은 해 9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향하는 성지 순례객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순례객들은 며칠 후 일어날 역대 최악의 압사 사고를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성지 순례의 첫 시작은 자신의 몸을 청결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목욕과 손톱 발톱 정리는 물론 신체에 있는 모발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하얀색 천으로 된 의복을 갖춰 입은 후에는 어떠한 신체적인 변화나 남녀 간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외적인 준비가 끝나면 그들은 각각 순서에 따라 이동을 하게 되는데 먼저 사우디 메카에 위치한 하람 사원으로 가 그곳에 있는 카바신전을 중심으로 일곱 바퀴를 돌며 예배를 본다.

이후 아라파트 언덕에 올라 예배를 보고 미나 평원으로 이동해 돌기둥 3개의 조약도를 집어던진 후 다시 메카로 복귀하는 것이 성지순례의 코스다.

9월 24일 사건 당일 당시 사우디의 성지 순례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백만의 무슬림들이 몰려들었고 술래 코스 안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특정 구간이 존재하여 이 구간에서 유독 사고가 많이 발생해 왔다.

현지시간 오전 9시 순례객들이 악마를 내쫓는다는 의미로 세계의 돌기둥에 조약돌을 던지는 자마라트 다리에는 돌을 던지러 가려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겹쳐져 막혀 있었다.

해당 구간은 병목 현상이 있어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 압사의 위험이 있는 구간도 존재했는데 당시 이 구간은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반대로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들로 빼곡하게 막힌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일을 알 리가 없던 뒤쪽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앞으로 밀고 들어왔고 반대편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밀고 나와 사람들이 점점 압박되기 시작한다.

앞뒤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호흡 곤란을 겪으며 소리를 질렀고 하나 둘 중심을 잃어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는데 이때 사람들은 각자 본인 먼저 빨리 현장을 벗어나려 했고 이로 인해 쓰러진 사람들이로 몇 겹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쓰러진다.

몸을 압박당한 사람들이 살려달라 소리를 질렀지만 순식간에 혼잡해진 현장의 소음 탓에 구조도 탈출도 불가능한 상태였는데 사실 사우디 정부는 앞서 1990년에 1426명의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후 순례길 곳곳에 십만 명의 보안군을 배치하고 오천 개가 넘는 씨씨티비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당시 너무나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이를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인만 탈출하기 바빠진 사람들은 심지어 넘어진 사람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이 중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펜스로 막힌 공간 옆으로 빽빽하게 줄을 선 채로 갇혀 있던 순례객들을 보고 이들을 우회시키기 위해 한쪽 펜스를 열게 되었는데 새로운 통로가 확보되며 통행이 잠시 원활해졌으나 곧이어 이곳에서도 압사 사고가 발생한다.

결국 서로 간의 심한 압박이 지속되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사건 초기 사우디 정부는 769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타국의 조사 결과 무려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고 부상자 또한 수천 명에 달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 나이지리아 하원 의원 그리고 이란의 외교관 등 여러 국가의 공직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무엇보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돌을 던지는 구간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몇 개의 도로가 막혀 있었고 이로 인해 평소의 입구로 사용되는 구간을 반대편에 있던 순례객들이 출구로 사용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사람들이 압박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사우디 왕세자와 부왕세자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 이날 현장에 방문 계획이 있어 도로가 통제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하나의 구간으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사우디 정부는 이를 부인하였다.

사실 사우디 정부는 나라별로 참여 가능한 인원 수에 제한을 두고 각각 배정된 인원 수만큼만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며 나름 사고 예방에 신경을 써왔지만 순간적으로 좁은 공간으로 밀려든 수십만의 인파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 사우디와의 관계가 좋지 않던 이란은 사건 직후부터 계속해서 사우디를 비난하였고 이로 인해 두 나라의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기도 했는데 이후 사우디 정부는 사건 발생 당시 해당 지역에 있던 관료들을 상대로 책임을 묻기 위해 색출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 미나 지역의 스물여덟 명의 관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들은 곧 처형당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약 2,400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는데 2001년 35명, 2003년 14명, 2004년 251명, 2006년 346명 등 그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중 가장 치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사건 현장인 자마라트 다리 부근은 2004년에 이미 개선 작업이 이루어져 20만 명의 통행 가능 인원을 60만 명으로 늘린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사고 예방을 하지 못했다며 사우디 정부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한편 재난의 원인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로 매년 압사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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